당시 중국의 몰락과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를 보면서.
바로 진유(眞儒)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재상이야 잘만 고르면 언제라도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의 말이었다.
참선비의 학문이란 치국안민에 근본적인 뜻이 있고 오랑캐를 물리치고 국가재정을 넉넉하게 하며.율곡과 다산의 진짜 선비 혼탁한 세상에 더욱 빛나 군주를 도와 나라를 안정 이제 그런 선비는 없는가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 있는 자운서원.그러나 때로는 진부하리라 여겨지는 옛말이 가슴에 딱 와 닿은 경우도 있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특히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는 망한다며 온갖 개혁적인 저서를 남겼다는 점으로 보아도 두 분은 유사점이 많은 학자요 참선비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선비의 나라였다.
자나 깨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던 애국심으로 보거나 두 분은 많이 닮은 점이 많다.그렇다고 해서 다른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화를 추진했던 지식인들은 시모노세키 조약 후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곳에 독립문을 세웠다.미국·러시아와의 외교를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근대화의 성공이 제국으로.여기에는 당시 조선 정부와 개화파 지식인에 대한 평가가 그 핵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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